그리움이 깃든 서민들의 여름 별미 ‘콩국수’

서울식품안전뉴스 2017년 06월 01일


한여름 무더위를 씻어주는 별미로 콩국수만 한 음식도 드물다. 시원한 콩국에 채 친 오이를 올려놓고 얼음 동동 띄우면 흐르던 땀도 쏙 들어간다. 콩국수는 냉면과 쌍벽을 이루는 여름철 대표 음식이지만 냉면과는 정서적으로 차이가 있다.

모두가 즐겨먹지만 기록에 등장은 약 100년 전

냉면은 사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다. 북한에서 발달한 평양냉면, 함흥냉면은 주로 밖에 나가 음식점에서 사 먹는 외식 음식이다. 반면 콩국수는 여름철 어머니가 직접 콩을 갈아 말아서 주던 어머니표 국수다. 부모님 고향이 이북인 사람이 아니라면 냉면보다 콩국수에서 향수를 느끼는 이유다.

더군다나 서민들의 여름 별미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콩국수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고향이 시골이건 도시건, 고향의 맛이랄까 아니면 어머니의 손맛 같은 것이 콩국수에 녹아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즐겨 먹고, 또 만들기에 그다지 어렵지도 않을 것 같은 콩국수가 옛날 기록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콩국수가 언제부터 서민들의 여름철 별미가 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기록에는 19세기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 나온다. 발간 연대를 19세기 말이라고 했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1911년 발행본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나온 책이다.

양반이 먹던 깻국 vs 서민들이 먹던 콩국수

콩을 물에 불린 후 살짝 데치고 갈아서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밀국수를 말아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고 했다. 지금의 콩국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는 부분이다. 양반들의 여름 별미인 깻국처럼 먹는다는 설명이니 콩국수 만드는 법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양반들이 먹은 깻국은 19세기 중반 《동국세시기》에 그 모습이 보인다. 여름철 계절 음식으로 밀가루 국수를 만든 다음 거기에 오이와 닭고기를 넣어 백마자탕(白麻子湯)에 말아 먹는다고 했는데, 백마자탕이 바로 들깨를 갈아 만든 깻국이다. 깻국의 형태가 지금의 콩국수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옛 문헌에 콩국수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조리서는 물론이고 양반들의 문집에서도 콩국수 관련 기록은 찾기 힘든데, 콩국수가 철저하게 서민들의 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배고플 때마다 이용된 서민의 음식 ‘콩국수’

콩국수의 주재료인 콩국은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자주 마시던 음료였다. 다만 지금 두유(豆乳)를 마시는 것처럼 건강 음료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콩을 갈아 국물을 만들어놓고 배고플 때마다 부족한 양식 대신 수시로 콩국을 마시며 영양을 보충했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자신은 친지들과 콩 먹는 모임인 삼두회(三豆會)를 만들어서 콩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이익이 주로 먹었다는 콩 음식이 콩죽 한 사발, 콩국 한 잔에 콩나물 한 쟁반이다. 그럴듯한 이름의 삼두회란 가난한 살림을 아름답게 묘사한 수사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다산 정약용 역시 봄철 춘궁기가 되면 곡식뒤주 비는 일이 잦아서 콩국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낸다고 했으니 콩국수의 주재료인 콩국은 이렇게 청빈한 선비들이 절개를 지키며 먹는 음식이었고, 살림이 넉넉지 않은 서민과 농민들이 양식 대신에 마시던 음식이었다.

지금은 콩값이 쌀값의 약 두 배가 될 정도로 비싸졌기에 콩으로 만든 음식이 전혀 싸구려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옛날에는 감옥에서 콩밥을 먹였을 정도로 콩은 흔해빠진 곡식이었다.

양반의 음식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진 음식

콩국수는 콩국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옛날에 가난한 사람들이 곡식 대신에 끼니를 때우려고 마셨던 콩국에 귀한 밀가루 국수를 말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는 ‘진가루’로 불렸던 밀가루는 역시 귀한 깻국에 말아 먹었으니 깻국에 국수 말고 오이와 닭고기를 얹은 백마자탕은 양반들의 여름철 별미가 됐다.

반면 평민들은 평소 마시던 콩국에 메밀이나 감자로 만든 국수를 말아 여름철 별미로 삼았을 것이니, 이것은 양반들의 요리책에 레시피를 올릴만한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20세기가 다 되어서야 《시의전서》에 깻국처럼 먹는다는 설명과 함께 오른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영양이 넘치는 시대다. 그러니 양반들의 별미인 기름진 깻국은 사라지고 평민들이 먹던 콩국을 주재료로 하여 깨, 잣, 땅콩을 곁들여 먹게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음식에도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