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 건강 이야기 ] 세계 속 서울의 맛
대표 궁중음식 신선로
우리나라 전통음식 중에는 오방색(五方色)의 재료를 원으로 빙 둘러 놓듯 늘어놓은 화려한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구절판이 그렇고 비빔밥이 그렇다. 이렇게 꽃밭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음식 중 가장 고급스럽고 화려하기로 치자면 단연 신선로(神仙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글_정희선 교수(숙명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신선로라는 이름은 사실 이 음식을 담는 특별한 그릇의 명칭이며, 신선로의 다른 이름은 열구자탕(悅口子)이다. 열구자란 입을 즐겁게 한다는 의미로 갖가지 재료가 입맛을 돋우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눈을 즐겁게 하는 화려한 모양새나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식기의 기능성 등이 더해져 오감을 만족시킨다.
신선로는 재료가 고급스러운 만큼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내고 궁중이나 도성에 거주하는 지체 높은 양반가에서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신선로는 궁을 중심으로 서울, 경기 지방의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역사에 기록된 신선로 조리법

신선로

신선로의 조리법은 <수문사설(1740)>, <규합총서(1809)>, <음식법(1854)>, <조선요리제법(1913)>,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등 그 시대에 저술된 조리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신선로는 사실 잡다한 재료를 넣고 국물을 잡아 끓이는 ‘잡탕’의 일종이다.
<음식법>에는 좀 더 격식을 갖춘 잡탕으로 신선로를 소개하고 있으며 <규합총서>에도 신선로를 ‘잡탕’이라고 칭하고 있다. 다만 그 재료가 잡탕보다 훨씬 다양하고 화려하며 그 모양새가 임금님께 바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반 냄비가 아닌 신선로라는 전용 그릇을 사용한 다는 점도 신선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신선로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쇠고기 육수를 만든다. 그리고 신선로 맨 밑바닥에 무와 양념한 고기를 깐다. 그 위에 신선로 틀에 맞게 썬 갖가지 재료를 색을 맞춰 보기 좋게 담는다. 가장자리에는 완자를 빚어 둘러놓고 고명으로는 은행, 호두를 얹는다. 마지막으로 쇠고기 육수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해 신선로에 붓고 화통에 숯불을 넣어 상에 올리면 된다.

갖가지 재료와 조리법 총 망라된 요리의 완성
신선로
위의 조리법에서 나타났듯이 신선로는 한국의 산, 바다, 들, 하늘에서 나는 모든 식재료를 여러 가지 조리법을 사용해 각각 조리해 한 냄비에 담은 호화 영양식이라 할 수 있다. 신선로의 다양한 식재료는 다른 한국음식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특징이다. 얼마나 많은 재료가 들어갔던지 북한의 백과사전인 <조선의 민속전통(1994)>에서 신선로를 “궁중료리 가운데서 음식감의 가짓수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는 료리의 하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신선로에 들어가는 재료를 분류해보면 꿩이나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양, 천엽 등의 육류의 순무(혹은 무), 미나리, 도라지, 파, 표고 등의 채소, 새우, 해삼, 전복 등의 해산물, 여기에 고명으로 호두, 은행 등의 견과류 등 거의 모든 식품군이 포함된다. 이러한 재료들은 각각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 등의 오방색으로 분류된다. 오방색은 음식을 화려하게 만드는 역할도 했지만 본래 의도는 오행의 기운을 상징하는 식재료를 통해 기운을 북돋고자 함이었다. 한 가지 요리를 만들기 위해 이처럼 다양한 조리법이 사용되는 것도 드물다.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고 지단 · 생선전을 부치고, 표고 · 목이 · 석이 · 느타리는 볶는 등 신선로에는 식재료에 맞는 갖가지 조리법이 사용되고 있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담백한 맛으로 외국인에게도 인기
영양학적으로 우수하고 담백한 맛으로 외국인에게도 인기

신선로 영향분석

신선로는 대표적인 고단백 저지방의 웰빙 요리이기도 하다. 영양분석표에서 볼 수 있듯이 신선로 1인분은 약 320㎉로서 쌀밥 한 공기(300㎉)와 각종 반찬을 더하면 성인의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은 현대인들에게는 맛있고 영양가도 풍부하지만, 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선로는 외국인들에게도 가장 인상적인 음식으로 꼽히는 만큼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 등 국빈을 대접할 때 빠지지 않고 상에 올랐다.
신선로는 종교,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식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재료를 가감해 만들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 사람이나 쇠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교인에게는 해당 고기를 빼고 조리하면 되고 채식주의자의 경우에는 고기를 빼고 두부로 대체하는 등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또 해산물을 이용한 해물 신선로, 국수를 넣은 면 신선로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응용이 가능하다.
한 한식당에서는 은으로 만든 1인분 용량의 신선로 그릇을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이는 여럿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지 않는 외국인에게 적합한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