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애환 담은 지역 문화, 신림동 순대 서사시

서울식품안전뉴스 2017년 09월 01일


순대는 역사가 깊은 음식이다. 2,500년 전 동양 고전인 시경에는 순대로 손님을 대접했다는 노래가 보인다. 비슷한 시기 서양에서도 순대의 또 다른 형태인 소시지로 잔치를 벌였다는 내용이 호머의 오디세이에 실려 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그 이름, 순대

순대는 종류만 다를 뿐 세계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우리는 물론 중국, 몽골, 동남아와 유럽에도 다양한 형태의 순대가 있다.

특히 유럽에서 모르시야(Morcilla), 블랙푸딩(Black pudding)과 같은 순대류의 음식은 '고급'으로 여겨진다. 창자 손질부터 그 속에 선지를 넣는 것까지 만드는 전 과정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민 음식으로 환골탈태

유럽과 달리 요즘 한국에서 순대는 '서민의 음식'으로 꼽힌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순대는 고급 음식에 속했다. 날씨가 추운 이북에서 발달한 순대는 잔칫날처럼 특별한 날에 준비하는 음식이었다.

문헌에 보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대는 1670년 안동 장씨가 쓴 양반집의 조리서인 '규곤시의방'에 등장한다. 특이한 점은 지금처럼 돼지가 아닌 개순대(개의 창자로 만든 순대)라는 점이다.

이랬던 순대가 서민 음식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은 1970년대다. 일본에 돼지고기를 수출하고 남은 돼지 창자에 당면을 넣은 ‘당면 순대’가 보급됐다. 이 무렵을 전후로 해서 전국의 시장 좌판에 순대가 올랐다.

신림동 순대, 그 전설의 서막

'순대의 메카'로 꼽히는 '신림동 순대'의 시작도 이때부터였다. 70년대 신림동 달동네에는 구로공단 노동자와 강남 막노동꾼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이 출퇴근길에 지나가는 길목에는 신림시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파는 순대볶음은 저렴하게 배도 채우고 술안주로 곁들일 수 있는 인기 메뉴가 됐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림동은 고시촌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전국에서 '고시패스'의 꿈을 품은 고시생들이 신림동으로 몰렸다. 노동자와 학생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10개 남짓이던 신림시장 순대 점포는 60개를 넘어섰다. 자연스레 신림시장은 '순대골목'으로 변신했다.

신림동 순대, 문화(文化)가 되다

신림동 순대는 1990년대에 들어 정점을 맞는다. 신림시장은 재개발로 사라졌지만 그곳의 순대 골목은 92년 신림극장 뒤 먹자골목에 '양지순대타운'과 '원조민속순대타운'으로 재탄생했다.

'타운'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생겼어도 그 안은 여전히 신림시장의 정겨운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러 순대 가게가 경계 없이 이어져 있고, 밤낮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장에서 팔던 메뉴도 그대로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양념 없이 기름에 순대와 채소를 볶은 '백순대볶음'과 매콤한 양념의 '순대볶음'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순대는 전문 공장에서 납품받는 '맞춤형' 식재료로 찹쌀과 감자전분 등을 첨가해 오랜 시간 볶고 데워도 퍼지지 않고 쫄깃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순대 타운 내에는 51개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지만 맛은 모두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순대를 납품받는 공장은 단 2곳이기 때문이다. '어느 가게 순대가 더 맛있을까?' 이런 의심은 접어두고 어떤 가게를 가더라도 최고의 순대볶음을 즐길 수 있다.

지역 노동자와 고시생들의 애환을 담은 그 순대는 하나의 음식을 넘어서 지역의 문화가 됐다. 순대를 파는 곳도, 순대를 먹는 사람도 바뀌었지만 신림동 순대는 늘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한다. '싸고, 푸짐하고, 맛있게 즐기는 서민 음식' 바로 그 모습 그대로다.